‘대박’ 웹툰, 이제 PD 아닌 독자 눈에 맡긴다
전 세계 100兆 웹툰 시장… 다음 성공 IP는?
“답은 독자가 알고 있다” 제작부터 ‘함께’ 전략
네이버웹툰, 웹툰 모니터링단 구성
예상 독자 행동 분석도… ‘획일화’ 자성 목소리도
“어떤 작품이 흥행할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내 웹툰 업계가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조원 규모로 급성장하는 웹툰 시장을 노리고 신진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드라마 영화, 나아가 게임으로까지 확장 가능한 원천 IP(스토리, 세계관 등 지식재산권)를 찾기 위해서다. 업체들은 작품을 연재하기 전부터 독자들의 의견을 묻거나 자체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개발하는 등 잠재적 ‘대박’ 웹툰을 가려내는 선구안을 기르고 있다.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전 세계 웹툰 시장 규모는 현재 7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모바일 콘텐츠로 발생하는 부가수익을 포함하면 규모는 100조원까지 커진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웹툰의 ‘원조’ 격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상반기에만 역대 최대 매출인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해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한 리디와 그외 레진코믹스, 탑툰, 투믹스 등 플랫폼들의 성장세까지 고려하면 올해만 국내 웹툰 시장은 4조원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철저히 독자의 관점에서 웹툰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독자의 취향에 맞춰 이야기, 작화 등을 가공해 작품이 흥행할 확률을 높이자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이런 접근을 취하고 있는 작가들이 상당수 있다”며 “플랫폼별로 작품을 여러 개 올린 뒤, 그곳에 달린 독자 댓글을 바탕으로 다음 화를 전개하는 식이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네이버웹툰은 이런 제작 방식에서 착안해 ‘퍼스트 리더스 그룹(FRG)’을 구성 중이다. 50명의 독자로 꾸려질 FRG는 미공개 신작을 감상하고 이 작품들이 재미있는지, 어떤 독자가 좋아할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지 등 의견을 회사와 공유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네이버웹툰은 조만간 FRG를 출범한다.
네이버웹툰 측은 “FRG는 이달 중순부터 2개월 동안 매주 2~3개씩, 총 20개 내외의 미공개 작품을 읽게 될 것”이라며 “주 이용자층인 20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의견을 듣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웹툰은 특히 청소년의 유입을 위해 FRG 지원 자격도 ‘15세 이상’부터 가능하도록 했다. 네이버웹툰 측은 “웹툰 감상평과 자기소개에 웹툰에 대한 애정을 담거나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이 있는 신청자를 위주로 검토하고 있다”며 “최종 합격자의 의견은 온라인 설문 형식으로 취합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네이버웹툰은 FRG 도입으로 잇따른 표절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 5월, 신작 ‘이매망량’이 일본 만화 ‘체인소맨’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연재를 중단하고 독자가 참여하는 작품 모니터링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예상 독자 반응을 추리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곳도 나타났다. 지난달 ‘시리즈A 라운드 투자(스타트업 초기 단계 투자)’를 유치한 오늘의웹툰이다. 오늘의웹툰은 작가가 3화 분량의 원고를 제출하면 이를 자사 분석용 플랫폼에 올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입된 독자의 클릭률, 이탈률, 완독률 등 데이터를 집계한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는 보고서 형태로 전문가 의견과 함께 작가에게 전달한다.
오늘의웹툰 측은 “지난 6월 500명 이상의 작가에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며 “이 중 29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96% 이상은 개별 분석 항목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고, 80%는 작품의 전개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오늘의웹툰은 이를 바탕으로 연말까지 3000개 이상의 작품에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진수글 대표는 “네이버 도전만화에 매년 올라오는 작품이 연간 1만개 정도 된다”며 “정식 연재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5000개로 보고, 60%에 해당하는 3000개를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독자 중심의 웹툰 제작 방식이 자칫 장르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업자가 독자 입맛에 맞는 작품만을 요구하면 작가가 원하는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웹툰도 문학의 일종인 만큼 획일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중성이 없으면 독자의 눈에 띌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라며 “지금 연재 중인 작품 중에도 문학적 가치는 충분히 있지만 ‘돈이 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화면 하단에 배치되고 있는 게 여럿 된다”고 말했다.